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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사석탑1

    소개

    미륵사지내에 있는 이 석탑은 미륵사지 서원(西院)에 자리하고 있으며, 국내에 남아 전하는 석탑으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탑이다.

    현재 남아있는 층수는 6층 지붕돌까지 보여지고 있는데, 이 탑의 층수에 대해서 한때는 7층설이 주장 되기도 하였으나 동탑지 주변발굴에서 노반(露盤)이 발견되어 9층이었음이 밝혀졌다.

    이 석탑은 목조탑파의 양식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한국 석탑의 기원이 되는 것이다. 구조를 보면 화강암을 사용하여 조성된 이 탑은 방형(方形)의 이중(二重) 기단석(基壇石) 위에 사방 세칸의 탑을 쌓았다. 초층에는 배흘림형식을 갖춘 네모꼴의 돌기둥을 설치하고, 기둥머리위에는 평방(平枋)고 창방(昌枋)을 올려놓았으며, 각 중앙칸에는 출입구를 만들어 十자모양의 내부로 통하는 통로를 두었고, 탑내 중앙의 교차되는 중심에는 바른 네모꼴 모양의 찰주(擦柱)에서 주목되는 것은 네모꼴 기둥의 가공한 기법이 배흘림 양식이며, 우주(隅柱)의 경우 귀솟음 기법을 사용한 것이 매우 특이하다.

    또 이 탑의 특징은 목조건물에서는 공포(拱包)를 가설하였을 것이나, 이 탑에서는 목재와 같이 기교있게 공포(拱包)를 조각할 수 없으므로 공포양식을 모방한 3단의 층급받침으로 지붕돌를 받치도록 하였다. 지붕돌은 얇고 넓은데 네 모퉁이가 가볍게 치켜들고 있어서 신라 석탑양식에서는 볼 수 없는 백제 특유의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층 이상은 탑신(塔身)이 얕아지고 각 부분의 가구수법을 약화시켰으며, 지붕돌은 폭만 줄여 1층과 같은 수법을 보이고 있다. 5층이상의 층급받침은 3단에서 4단으로 증가되었다. 그리고, 각 기둥과 면석, 창방과 층급받침 등을 모두 별개석으로 엿물림 쌓기를 하고 있다.

    이 탑은 붕괴 직전에 있는 폐탑으로 남아있는 것을 1915년 일본인들이 보수하여 비교적 탑의 동쪽부분은 온전하게 남아있으나, 서쪽부분을 시멘트로 덮어 버러 조형미를 잃고 있다. 19992년에는 문화재관리국에서는 동탑지에서 발견된 탑부재를 치밀하게 조사하여 동탑을 9층으로 복원하였다.


    미륵사석탑2 미륵사석탑3 미륵사석탑4


    국보 제11호 미륵사지석탑

    미륵사석탑5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건립되어 있는 한국 최고최대의 석탑으로 이 미륵사지석탑은 현제 기양리의 속칭 노상리(路上里) 마을 옛 자리 서남쪽에 서 있는데 거의 전면이 파괴되어 동복면 한 귀통이의 6층까지만 남아 있으니 본래는 평면 4각형 탑으로서 과거에는 7층 이상의 탑신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추측하였었다.

    미륵사지 석탑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석탑으로 보고 기원을 이 석탑에 두고 있는 이유는 이 탑을 하나의 석조건물로 보는 동시에 건조 양식이 목탑과 흡사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탑은 이전에 선행(先行)하였던 목탑의 각부 양식을 목재 대신에 석재로서 충실하게 구현하였기에 석탑 발생 계열에 있어서 마땅히 선두에 두게 되는 것이다.

    각부의 구조를 살펴 보던 기단부는 목탑에 있어서와 같이 낮고도 작은 편이다. 탑신부에 있어서 초층 탑신은 각 면이 3칸씩이고 중앙의 1칸에는 사방에 문호를 마련하여 내부로 통하게 하였으며 내부 중앙의 교차되는 중심에는 거대한 4각형석주가 있어 이것이 곧 이 석탑의 찰주인데 이러한 4각형 석주가 지탱하고 있는 것도 목탑의 형식과 같다고 하겠다.

    각 면에는 엔타시스를 표현한 4각형의 석주를 세우고 그 위에 평방(平枋)과 창방(昌枋)을 가설하였으며 다시 두공양식을 모방한 3단의 받침이 있어 옥개석을 받고 있는데 이것 또한 목조건축 가구를 본받고 있는 것이다. 2층 이상의 탑신은 초층보다는 훨씬 얕아졌으나 각층 높이의 차이는 심하지 많으며 각부의 가구수법이 간략화 됨을 알 수 있다. 옥매는 얇고 넓은데 네 귀퉁이 전각에 이르러 약간의 반전을 보이며 2층 이상의 옥개석은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줄어들었을 뿐 두공앙식의 3단 옥개받침이나 전각의 반전 등 각부는 초층과 같은 수법을 보이고 있다.

    이 석탑적 원형에 대해서는 일제시대에 그들이 9층탑으로 복원도를 제시한 바 있고 상륜부도 목탑의 상륜으로 추측 고찰하기도 하였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었는데 최근에 이 석탑에 관한 세부 실측조사에서 9층탑이었음을 고증한 바 있어 현재는 본래 9층탑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의 규모로 보아 적어도 9층 위에 상륜부까지의 높이를 계산한다면 실로 20m가 넘는 거대한 석탑이었으리라 생각되는 것이다.

    이 석탑의 건립연대에 관해서는 과거 일본인 학자들이 통일신라시대의 건조물이라 지정 한 바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백제시대 公州都邑期인 東城王代로 추정하기도 하였으나 이 문제는 곧 이곳 미륵사의 창건과 아울러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조성연대 추정은 석탑자체가 지니고 있는 양식 수법의 고찰은 물론이거니와 고대의 기록에서도 그 뒷받침을 얻음으로써 더욱 확고해질 수 있는 것이니 『삼국유사』의 기이편 무왕설화에 보이는내용을 주목해야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점을 종합해 볼 때 이 석탑은 백제 말기인 무왕代(60O~641)의 건립으로 추정하는 것이 무리가 아닐 것 같다.

    앞으로 이 석탑의 보존문제에 대하여는 전문가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우선현 상태에서 누구나가 다 느낄 수 인는 것은 일제시대에 동북면 한 곳만을 제외한 나머지 전면에 시멘트를 고착시켜 놓은 것을 계거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겠다. 그리하여 상층부에서 도괴된 부재를 재검토하 특히 6층 이상의 부재에 대한 분류와 이를 기초로 한 복원고찰로 원형을 파악해야 할 것이며 상륜부재를 찾아내어 상륜부에대한 연구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이 탑에 쓰였던 석재는 실로 수 백개에 달할 것인데 이러한 학술적인 기초조사가 전혀 없이 시멘트의 보강을 서들렀던 일본인들의 무지함이 안타깝다. 이 석탑은 백제뿐만이 아니라 삼국기 한반도에서의 최초의 석탑으로 주목되는 바 고려시대에 이르러 이 석탑이 위치한 익산지역에서는 미륵사지석탑 양식을 본받게 되는, 이른바 백제계 석탑 건립의 모범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각 부재에서 주의를 끄는 몇가지 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백제 무왕대인 7세기 초반에 건립된 석탑으로 연대를 잘 알 수 있어 각부의 양식수법 이 시대적 기준을 갖고 있다.

    - 평면 구성이 직4각형이며 多層을 이루고 있다.

    - 기단부의 구성은 목탑과도 같이 낮고도 작은 편이다.

    - 4각형 석주형의 우주와 탱주에 엔타시스를 표현하고 있다.

    - 초층의 목개받침은 단순한 층단만이 아니라 평방과 창방을 가설한 위에 놓인 점으로 보아 목조건측의 가구를 본받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2층의 탑신은 초층보다 훨씬 얕아졌는데 2층 이상부터의 체감율은 매우 약해지고 있다.

    - 옥재는 얇도도 거대하며 하면의 추녀는 수평으로 전개되고 네 귀퉁이 전각부에 이르러 약간의 곡선을 보이며 반전하였다.

    - 낙수면이 평박하므로 옥개가 더욱 광대하게 보이는데 상면에는 높직한 괴임석을 끼워 그 위층의 부재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