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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사지1

    소개

    사자사(師子寺)는 금마면 신용리 미륵산 정상 밑에 위치하는데 『삼국유사』 무왕조에는 지명법사(知命法師)가 거주했던 사찰로 전해진다. 지명법사는 서동이 오금산에서 마를 캐다 얻은 황금을 하루밤 사이에 신라 궁중에 보내고, 무왕이 미륵사지를 창건하는데 하루밤 동안에 연못을 메운 신통력이 뛰어났던 승려이다. 1994년 부여 문화재연구소의 발굴 조사 결과 백제시대나 통일신라시대의 건물지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사자암은 발굴조사로 인하여 비교적 높은 석축이 남·북을 축으로하여 동에서 서쪽으로 세개가 드러났는데 사자암 법당은 이들 석축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조사에서 확인된 건물터는 고려 초기에서 중기가지의 것과, 고려말경에서 조선시대 전기까지의 터, 그리고 조선후기 건물터로 크게 나누어 세시기의 것이 확인되었다.



    사자사지2

    이 중 고려말경 부터 조선전기에 걸쳐 사용된 건물터는 가장 넓은 범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상·중·하의 석축 중 중간석축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유구는 건물터와 석축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가장 높은 석축에는 건물터 흔적은 있었으나 규모와 형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이 유구에서는 고려말의 기와와 조선전기의 기와가 많이 출토되었고, 같은 시기의 분청사기·백자·청자 등의 파편이 많은 발견되었다.특히, 이곳에서는 '지치 2년(至治 二年) 사자사조와(師子寺造瓦)'라는 글이 있는 암막새 기와가 출토되어, 이곳이 사자사터임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고려초기 건물터에서 통일신라 토기 및 백제시대 기와가 함께 조사되어 지금까지 전하여온 사자사터임을 확증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발굴조사 후 과거 법당이 자리에 약간 확장하여 현재의 대웅전을 건립하였다. 사자암 바로 밑의 석굴에는 많은 동(銅)으로 만든 작은 부처 소동불를 모셔 두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확인할 길이 없다.



    사자사지3

    현재 이 사자암내에는 높이 276cm의 석탑이 있다. 이 석탑은 현재 이곳에 있기 전에는 남족 길로 30여 m 쯤 떨어진 바위들 길목의 앞길 동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전한다. 이 석탑은 크게 기단부와 탑신부만 남아 잇는데, 석재의 크기, 양식 등으로 보아 서로 이질(異質)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 순수한 탑재만으로 구성된 것 같지는 않다.

    기단부는 탑의 부재로 볼 수 없는 경우에 지대석과 꽃잎의 끝을 아래를 향해 오므린 형태의 복련대좌와, 간석(竿石), 꽃잎의 끝을 위로 향한 앙련석가지는 석등(石燈)의 구조 및 양식과 흡사하다.

    그리고, 앙련석 위로를 탑신석 3기와 지붕돌 2기가 올려져 있으나, 맨 윗쪽 2기의 탑신석은 적당히 갠 돌을 탑신석용으로 끼워 사용하였고, 맨 위의 지붕돌은 상·하가 뒤 바뀐 채 거꾸로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