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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환경농법과 건강을 생각하며
    믿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

    자연을 안고 사는어량마을

    인심좋고 공기맑은 자연속에서
    농촌만이 누릴수 있는 우리마을
    이병기생가1

    시조시인이자 국문학자인 가람 이병기(1891~1968)선생이 살던 목조 초가집이다. 가옥은 조선 후기 양반집의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ㄱ자형인 고패형으로 된 안채와 사랑채, 광채와 승운정이라는 모정 등이 남아 있으며, 입구 족에 세워졌던 3칸의 행랑채는 1990년대 초에 복원되었다. 모정 앞쪽으로는 자그마한 연못을 두 곳에 파 놓았으며, 모정의 뒤편에는 일꾼을 위한 각각 1칸씩의 방과 부엌으로 구성된 외딴채가 있다. 수우재, 진당수 등의 현판이 걸려 있는 4칸의 사랑채는 2칸의 사랑방과 한 칸의 부엌, 그리고 한 칸의 서재로 구성되었으며, 정면에는 툇마루를 놓았다. 잡석으로 쌓은 축대 위에 세워진 안채에는 안방과 마루, 부엌이 이어 있으며, 안채의 뒤에는 장독대가 있다.



    이병기생가2

    원래 초가였었는데 새마을운동 때에 기와로 개량하였다가 다시 초가로 환원하였다. 1980년 후반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볏짚으로 지붕 이엉을 얹고 안채와 행랑채, 사랑채 등을 보수해 왔다.

    최근에는 건물의 앞족에 별은 주차장을 마련해 놓았다. 건물 자체에 큰 특징은 없으나 안채와 사랑채등이 고풍스러우면서도 소박하며, 옥내에 배치된 모정과 못 등은 조출한 선비 가옥으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건축물이다.



    이병기생가3

    1891딘 이 집에서 태어난 가람선생은 1968년77세를 일기로 역시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우리 한글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여 일찍이 1930년대부터 조선어문연구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1930년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위원과 '선어 표준어"사정위원이 되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경남도 흥원경찰서로 끌려가 1년간 옥고를 치른 뒤 고향에 내려와 칩거하였다 한편 해방후에는 전북대학교,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에서 국문학을 가르쳤다저서로는 『역대시조선』, 『가람문선』, 『문학전실』등이 있다.